“만족합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10시45분 제주국제공항. 국내 첫 지역항공사인 한성항공 HAN301편을 타고
청주공항을 출발해 제주공항에 도착한 김규환씨(42·서울 송파구 문정동)가 트랩을 내리면서 한 말이다.
서울 하계동의
동천특수학교 교사인 김씨는 이날 아내 윤난희씨(40)와 두살난 딸 윤하와 함께 제주여행을 가던 참이었다.
“생각보다 기체가
그리 심하게 흔들리지 않아 괜찮았어요. 이·착륙 거리가 짧아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고 기내 서비스도 좋았습니다. 흠이라면 프로펠러 소음이 귀에
거슬렸을 뿐이지요.”
김씨는 이날 오전 9시 출발하는 이 비행기를 타려고 새벽 6시30분에 서울 집을 나섰다. 그동안
김포공항을 통해 수차례 제주를 다녀오기는 했지만 청주공항을 택한 것은 처음이었다. 저가항공의 매력에 끌린 모험이었다.
김씨는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한성항공의 저가항공 취항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소형기여서 안전에 불안감도 없지 않았지만
제트와 프로펠러가 동시에 작동하고 무게가 적어 이·착륙때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저없이 선택했다고 한다.
김씨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승객과 지방공항활성화를 위해 제3민항이 적당한 시기에 출범했다”며 저가항공의 성공을 기대했다. 그는 3박4일간의 제주여행을
마치고 지난 3일 오후 5시50분 역시 한성항공 HAN302를 타고 청주공항을 거쳐 서울 집으로 돌아갔다.
#제트기보다 더 ‘안전’
프랑스 에어버스사의 자회사인 ATR사가 제작한 이 비행기는
제트엔진에 프로펠러를 장착한 터보프롭형태의 항공기다. 최대 운항속도는 시속 525㎞로 청주~제주간 운항시간은 65분이다. 연료소비량이 적어
경제성이 높은 저비용 고효율 항공기다. 좌석 수는 원래 72석이었으나 승객편의를 위해 66석으로 개조, 앞의자와의 간격이 기존 항공기보다
3㎝가량 넓다. 그만큼 탑승감이 좋다는 얘기다.
이·착륙 거리가 제트기의 절반수준이어서 활주로가 짧은 우리나라 공항에
적합하며 비행도중 엔진이 꺼져도 글라이딩을 통해 안전착륙이 가능하다.
한성항공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터보프롭과 제트항공기
사고율(1997~2001년)을 비교한 결과 사고는 터보프롭이 24%인 데 비해 제트는 76%, 준사고는 터보프롭 18%, 제트 82%로
터보프롭의 안전성이 우월하다. 한성항공 한우봉 사장은 “안전성에 대한 고객의 불신은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한번 타보면 안전성에
믿음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트기에 비해 소음이 크고 운항거리가 짧은 게 흠이다. 기체가 작다보니 중량감이
떨어지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강재필 기장(57)은 “절대적 안전과 편안한 여행을 보장해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는 승객들의 튼튼한 신발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저가항공 시대 열렸다
저가항공의 출현은 기대이상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안전성이 입소문으로 퍼지고 항공요금이 기존 항공사의 70% 수준이란 점이 이용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성항공이 인터넷 예약을 시작한 지 하루만에 추석연휴와 개천절 연휴 표가 매진됐고 평일엔 탑승률이 80~90%, 주말엔
거의 만석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성항공측은 터보프롭 항공기연료비가 제트기의 58% 수준인 데다 운항시간당
정비비용도 85%에 불과해 일반 항공사의 70%대 운임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존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에 비상이 걸린 것은 당연한 일. 먼저 아시아나항공은 한성항공 취항 다음날인 지난 1일부터 청주~제주 노선의 항공료를
9월 한달동안 30% 할인해 주고 있다. 이로써 아시아나항공의 항공료는 한성항공의 주중 4만5천원, 주말 5만2천원에 비해 불과 4,080원밖에
비싸지 않다. 이에 질세라 대한항공도 오는 15일까지 전 국내선 항공료를 최고 25%까지 할인에 들어갔다. 한성항공의 취항은 국내선 항공료의
저가경쟁에 불을 지핀 셈이 됐다.
이중 아시아나 항공이 유독 청주~제주노선에만 30% 할인을 들고 나온 것은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고 저가항공 확산을 막기 위한 견제용이라는 시각이다. 한성항공은 연말에 2호기를 도입, 김포~제주노선에 이어 내년에는 국제선 취항도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출범할 제주항공과 전북항공 등 제4, 5민항에 대한 이들 대형 항공사의 대응이 주목된다.
친척을 만나러 종종 제주에 간다는 강성식씨(57·사업·충북 청주시 율량동)는 “가격경쟁으로 항공료가 싸진 것은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형항공사의 무차별 공격으로 저가항공을 주도한 제3민항이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성항공이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요즘 제기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은 항공산업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안정경영은 안전운항을 담보하기 때문에 한성항공은 이의 해소를 통해 힘찬 날갯짓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청주|글
김영이기자 kye@kyunghyang.com〉
〈사진 김대진기자 m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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