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11일 서울시 세종로 균형발전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국방대학교(총장 정동한)의 이전지를 충남 논산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충남도의 최대 현안사업이었던 국방대 이전이 2005년 6월 24일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계획'발표 이후 2년 반 동안의 지루했던 여정이 종지부를 찍었다.
균형위측의 논산이전이 확정되는 순간 애타게 자리를 지키며 조마조마하던 이완구 지사와 관계 공무원들은 “2년 6개월간의 기나긴 시간동안 기울여온 노력이 이제야 결실을 보게 된데 대해 그동안 성원해준 도민들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는 말로 대신했다.
국방대의 논산이전은 한마디로 강한 충남 만들기의 대표적 사례다.
거슬러 올라가면 정부가 국방대학교의 이전지로 ‘각군 본부가 소재하는 충남’이라고 발표함에 따라 충남도 내에서는 계룡대 인근인 논산시와 계룡시가 유치의사를 밝혔다.
이에 국방대측은 정부의 지방이전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서울에 남기를 희망했고 군 원로들의 반대 움직임마저 보이자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국방대 이전 대상지역을 내부적으로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수정하고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방부 장관 등 관계 부처간 구두합의를 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충남도에서도 정부의 방침이 국방대의 이전지역으로 행복도시로 합의되자 논산․계룡 지역이 적합하다는 의지를 꺾고 일단 충남도내로 들어오는 수준에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이와맞물려 정부도 고민은 있었다. 당장 행복도시로 이전지를 변경하면 이미 제주도까지 이전하기로 결정된 170여개의 기관들이 너도나도 수도권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려 들것이 뻔한 상황이어서 경찰대학 등 다른 개별 이전기관들의 이전지가 결정되면 국방대도 행복도시로 슬그머니 이전시키려고 기회를 엿보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2006년도 민선4기의 5.31 지방선거를 맞으면서 이완구 당시 충남도지사 후보는 ‘충남은 수도권과 가까운 북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남부지역이 낙후된 만큼 지역의 중심축인 논산지역에 국방대를 유치해 각군 본부, 육군훈련소, 항공학교 등과 함께 국방산단을 만들어 이를 클러스터화하여야만이 상생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로 「국방대의 논산이전 관철」이라는 야심찬 공약을 제시했다.
'강한충남 건설'을 외치며 도지사에 당선된 이완구 지사는 국방대의 논산 이전이야말로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취지나 이전 원칙 등에 지극히 합당하다는 논리를 가지고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후문.
우선 국방대의 논산이전을 관철하기 위해 대통령과 총리, 부총리, 각부 장관들을 수없이 만나면서 국방대의 논산이전을 요청했으나 정부와 국방대의 한번 정해진 입장을 바꿀 수는 없다는 회신만 계속됐다.
이에 논산시민들도 합세, 유치위원회를 만들고 유치활동에 돌입해 유치활동의 양상은 민·관 합동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게된다.
목표를 위해서 매진해온 결과 2006년 11월 2일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국가에서 국방대의 이전지를 결정하는 국가균형위원의 임기가 만료되어 다시 위촉하게 되자 이완구 지사가 균형위 위원을 자청한 것이다.
이완구 지사는 시․도지사 협의회에 참석해 시․도지사들에게 국방대를 유치하려면 자신이 균형위원이 돼야한다고 지원을 요청했고 각 시․도지사들은 이 지사의 열정에 흔쾌히 만장일치로 추천했다.
또한 기획관리실장을 비롯한 관계공무원들과 충남발전연구원장과 머리를 맞대고 논산이전의 묘수를 찾아 숙의를 거듭한 끝에 행정도시 특별법에서 한줄기 빛을 찾을 수 있었다.
국방대가 행복도시로 이전하려면 행정도시 특별법상 행복도시 입주기관을 변경고시 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던 것.
특히 전문가들과의 재논의와 함께 주민공청회를 거쳐야만 가능했고 그밖에도 대통령 재가, 관계장관협의, 재고시등의 법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타 이전기관들과 주민들의 정서, 그리고 충남도의 적극적인 반대등에 부딪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행복도시 국비지원 한도액 8조 5천억원을 초과해야만 하는 문제도 현실적으로 국회에서 법개정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방대의 강력한 요청은 계속됐고 급기야 정부는 국방대의 손을 들어주기로 방침을 정하고 지난 4월 3일 국가균형위에 상정해 국방대의 행복도시행을 결정지으려 했다. 이때가 논산이전의 가장 큰 고비였다.
이러한 내부정보를 파악한 충남도는 좌시하지 않고 지역 언론과 주민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국방대의 행복도시 이전은 법취지를 무시하는 국론문란 행위라고 들고 일어났고 동시에 이완구 지사가 균형위에 직접 참석,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균형위는 이전결정을 일단 무기한 유보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유보된 국방대의 행복도시행을 논산행으로 바꾸고자 하는 충남도의 노력은 한층 탄력을 받았다.
이 지사는 마침 성경륭 당시 국가균형위 위원장이 부친상을 당하자 경남 진주까지 달려가 조문하는 열의를 보여주었고, 균형위원장과의 일대일 만찬대화를 요구하여 결국 위원장을 승복시킬 수 있었다.
당시 행복도시특별법의 다섯 가지 절차를 간과하고 간단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균형위원장에게 변호사 의견에 법적 하자까지 들먹이며 법과 논리를 가지고 따지고 들므로써 균형위원장을 당황케 했고 결국 행복도시행 유보결정이 형식적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것이었다.
이후부터 조금씩 균형위에서 국방대를 행복도시로 이전시키려는 의지는 차츰 약해지기 시작했다.
논산시민들의 유치 활동도 더욱 활발해져 균형위 앞에서 한여름철 따가운 햇볕을 맞아가며 1인 시위를 한달이 넘도록 전개, 시민 810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 하는 등 가능한 모든 활동을 배가 시켜왔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속에 국방대의 논산이전이 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도 막상 결정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6개월의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지난 10월 24일 대통령이 참석하는 태안 기업도시 준공식에 축사 문제를 가지고 참석여부를 다투던 이 지사는 결국 대통령까지 보고 돼 축사를 하게 됐고 내친 김에 홍성에서 태안까지 30분 동안 이완구 지사가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국방대의 논산 이전 결정을 논리적으로 건의, 노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고 이 지사의 뚝심에 감동한 대통령은 수행비서에게 “충남의 말이 맞다”고 불러주며 메모하라는 지시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국방대의 행복도시 이전의 법적인 문제나 행정적 절차 등을 면밀히 다시 보게 되었고 결국 11월 9일 행복도시 이전이 불가하다는 균형위의 의견을 건교부가 받아들이면서 '국방대의 행복도시 이전 불가' 원칙을 표명했다.
이러한 정부방침이 발표된 후 충남도에서는 정부의 행복도시 불가 입장에 따라 당연히 논산으로 결정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두번째 돌출 변수가 발생했다.
국방대가 논산이 아닌 수도권에서 가까운 북부지역으로 이전을 요청한데 따른 것으로 충남도는 국가균형발전의 목적과 기본원칙에 합당치 않다고 반대입장을 피력하고 도내 시장․군수들이 도지사와 논산시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11월 21일 도내 전 시장․군수들이 국방대의 논산이전이 당연함을 만장일치로 서면결의 했으며 일부 연기군 의원들이 유치활동에 나서기도 했지만 큰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한때 정부 일각에서는 충남도지사의 자기공약을 지키기 위한 딴지 걸기로 폄하하면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이 지사는 이에 개의치 않고 줄기차게 소송불사론까지 제기하며 밀고 나간 것이다. 여기에 박상돈 의원 등 지역 국회의원들도 당파를 초월해 적극 지원에 나섰다.
결국 뚝심과 정성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국방대의 논산유치는 교직원 518명 교육생 2,500명인 기관이 논산으로 이전한다는 의미 이상을 갖는다. 대전광역시의 자운대, 군수사령부, 국방과학연구소등과 함께 3군본부, 육군훈련소, 항공학교 등을 묶어 국방관련 교육, 연구시설을 클러스터화 하고 논산·계룡 등지에 국방산업단지를 조성하여 논산, 계룡, 대전권역을 하나로 묶는 국방혁신도시 건설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대의적 명분이 남아있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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