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밸류업 위해 상법 개정보다 ‘주주환원 촉진세제’ 도입해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가운데, 경제계가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는 상법 개정보다 주주환원 촉진세제 도입을 우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는 ‘2025년 조세제도 개선과제 건의서’를 통해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국회에서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워 소송 남발, 투자 위축, 혁신 저해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같은 모호한 입법보다는 주주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주주배당 확대를 위한 조세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매년 정부와 국회의 세법 개정에 앞서 기업 의견을 수렴해 건의해왔다. 올해 건의문에는 ▲주주환원 촉진세제 도입 ▲첨단산업 투자 세제지원 고도화 ▲위기산업 임시투자세액공제 적용 ▲상속세 개편 등 총 130건의 조세제도 개선 과제가 포함됐다.
주주환원 촉진: 배당 확대 위한 세제 개편 필요
대한상의는 주주 배당을 활성화하기 위해 ① 배당 세액공제 신설, ② 투자·상생협력촉진세 공제항목에 배당 포함, ③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을 건의했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약 35%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으며, 주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배당 확대(61.7%)와 자사주 매입·소각(47.5%)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주식투자가 국민의 보편적인 투자 수단이 된 만큼, 주주 배당 확대를 위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매입·소각과 현금배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규모는 18조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28배 증가했고, 현금배당 규모도 45조7000억 원으로 7.2% 늘어났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배당 확대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배당 증가분에 대한 5% 세액공제를 신설할 것을 건의했다. 지난해 정부 세법 개정안에 포함됐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내용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 중 투자, 임금 증가, 상생협력 지출에 사용한 금액에 대해 공제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의 공제 항목에 배당도 포함할 것을 요청했다. 현재 대기업은 법인세 부담 외에도 20%의 추가 세금을 부담하고 있으며, 배당 역시 투자나 임금 증가와 마찬가지로 공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소액주주의 배당 수령액을 실질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금융소득세 개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금융소득세는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을 합산한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을 초과하면 근로소득·사업소득과 합산해 최고 45%의 세율이 부과된다. 이에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를 폐지하고 9%의 단일세율을 적용하거나, 종합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50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첨단산업 지원: 세제지원 방식 고도화 및 농어촌특별세 비과세
대한상의는 첨단산업에 대한 실질적 세제 지원을 위해 ‘직접 환급(Direct Pay)’ 방식 도입과 미사용 세액공제의 제3자 양도 허용, 생산량 기반 세액공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현재 법인세 세액공제 방식의 지원은 영업이익이 발생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은 초기 대규모 투자로 인해 적자가 불가피해 공제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 프랑스 등 주요국들은 기업들이 세제 지원을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 미국: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투자금액의 25%를 공제하며, 초과 공제액은 현금 환급 가능
- 프랑스: 연구개발(R&D) 비용의 20%를 세액공제하며, 미공제 잔액을 현금 환급 또는 제3자 양도 허용
- 미국 IRA: 전기차 배터리 및 핵심 광물 생산에 생산량 기반 세액공제 적용
대한상의는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환급하는 ‘직접 환급’ 방식을 도입하고, 미사용 세액공제의 제3자 양도를 허용해 기업이 유연하게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반도체 사업화시설 투자세액공제에 부과되는 농어촌특별세를 비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칩스법’ 통과로 반도체 사업화시설 투자세액공제율이 20%로 확대됐지만, 농어촌특별세 부과로 인해 실질적인 공제율이 16%로 축소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위기산업 재편: 임시투자세액공제 및 이월결손금 공제 확대
최근 철강·석유화학 등 국가 기간산업이 중국발 과잉공급 여파로 위기에 처한 가운데, 대한상의는 위기산업을 위한 세제 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우선 위기산업을 지정하고, 해당 산업이 주력인 지역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선정해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를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2023년 도입된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올해부터 대기업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이를 재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기업이 과거 사업연도에 발생한 손실(결손금)을 이후 사업연도의 과세소득에서 차감할 수 있도록 하는 ‘이월결손금 공제’의 확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월결손금 공제 한도는 80%이며, 공제기간은 15년으로 제한돼 있다. 반면, 미국·호주·독일·프랑스·영국 등 주요국은 공제 한도를 100%로 두거나, 공제기간을 무제한으로 설정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이월결손금 공제한도를 100%로 상향하고, 공제기간을 20년으로 연장할 것을 건의했다.
대한상의 강석구 조사본부장은 “기업 혁신과 주주환원을 촉진하는 조세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정책 방향”이라고 강조했다.